신념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바뀌지 않을까?
사람들은 왜 한 번 믿기 시작한 것을 쉽게 바꾸지 않을까요? 신념은 단순한 생각 이상의 무언가입니다. 인간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이 복잡한 구조를 함께 풀어봅니다.
신념은 단지 생각의 결과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믿어.’ 이 한 마디에 담긴 무게는 생각보다 큽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하나의 ‘의견’ 정도로 여긴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 신념이 도전받을 때 보이는 반응은 거의 정체성을 위협받는 수준에 가깝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신념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감정과 경험이 뒤섞인 복합체이기 때문입니다.
신념은 어떤 계기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그것이 ‘신념’이 되는 데에는 감정적 의미 부여가 반드시 동반됩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부모의 말, 친구와의 경험, 특정한 감동적 사건 등이 그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결국 신념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삶의 조각”이 되는 것이죠.
왜 우리는 신념을 쉽게 바꾸지 못할까?
인간은 흔히 ‘이성적인 존재’로 묘사되지만, 실상은 ‘자기 정당화의 존재’에 가깝습니다. 특히 신념에 있어서만큼은 합리성보다는 정체성 보호가 우선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신념은 그 사람의 ‘존재 이유’와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설명하는 심리 이론 중 하나가 인지 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입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행동, 신념 사이에 불일치가 생기면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데, 이를 줄이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무시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예컨대 오랜 시간 특정 정치 성향을 지지해 온 사람이 그 정당의 비리를 접했을 때, "가짜 뉴스일 거야"라고 단정 짓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그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고, 나아가 ‘내가 틀렸었다’는 자아 붕괴를 피하고 싶은 것이죠.
신념을 더 강화시키는 심리적 기제들
흥미롭게도, 신념은 반대 정보가 등장할수록 오히려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백파이어 효과(Backfire Effect)라고 합니다. 반대 근거를 접할수록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보다는, ‘내 믿음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방어적으로 더 단단해지는 것이죠.
또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도 주요한 요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기존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에만 집중하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무지하거나 고집스러워서가 아니라, 뇌가 스스로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편안함’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심리 작용들은 정치적 신념, 종교적 신념, 도덕적 신념 등 거의 모든 믿음의 영역에서 나타납니다. 특히 SNS나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맞춤형 정보만 노출되는 환경에서는, 이러한 편향이 더 강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념은 바뀌지 않는가? 아니다, 바뀔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신념이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변화는 논리보다 관계와 경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한 종교를 비판하던 사람이, 그 종교를 믿는 따뜻한 친구를 만나고 나서 생각이 누그러진다든가, 반대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과 꾸준히 대화하며 시야가 넓어지는 일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이런 변화는 ‘이성적 설득’보다는 ‘감정적 연결’을 통해 일어납니다.
개인적으로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한때는 다소 엘리트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지역 도서관 자원봉사를 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를 마주한 뒤부터 관점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건 누군가 나를 설득해서가 아니라, 그들과의 대화와 공존의 시간이 내 마음을 자연스럽게 흔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론 : 신념은 '틀림'이 아니라 '다름'일 수도 있다
신념을 지키는 사람을 무조건 고집스럽다고 볼 순 없습니다. 그건 그 사람의 인생 경험, 가치 체계, 관계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이니까요. 반대로, 남의 신념을 바꾸려고 애쓰는 것 역시 때로는 오만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신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신념을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누구를 공격하는 수단이 되지 않는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여지는 남아 있는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습관이야말로 진짜 성숙함 아닐까요?
신념은 때로 벽이 되지만, 잘 다듬으면 다리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지금, 신념을 ‘절대 진리’가 아닌 ‘하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더욱 필요해지는 시대입니다.